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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8일 일요일

AKB48

AKB48


소위 AKB그룹이라고 불리는 그룹의 모체가 되는 그룹으로 모닝무스메(モーニング)이후의 많은 아이돌그룹들이 크게 지지를 얻지 못하여 아이돌그룹의 전국시대라고 불리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그룹으로 크지 못한데 반하여 마케팅 방법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유닛의 확장개념으로써 지역별 자매 그룹을 탄생시켜 활동범위의 확장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당초 아키하바라의 동키호테건물에서 시작한 아키하바라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작사가이자 오냥코클럽(おニャンクラブ)의 제작자로 유명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의 오디션공고로2005년 결성된 그룹으로써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표방하며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오냥코클럽(おニャンクラブ)과 비슷한 컨셉의 그룹이었기 때문에 연예계의 경험이 없는 인물들이 중심이었고 친근감을 주기 위하여 반에서 제일 예쁘지는 않지만 저런 아이와 사귀어보고 싶다 정도의 외모를 기준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전용 극장에서의 공연은 그해 12월에 관계자들과 7명의 관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2006년 2월에 びらたち로 인디즈 데뷔10월에는 いたかった로 메이저 데뷔를 하였고 2007년에는 NHK의 紅白歌合戰에 출장하였으나 이때 당시 인기를 얻던 나카가와 쇼코(中川翔子)등과 함께 아키바계(アキバ)로 출연한 것이었고 여고생들과 일부 마니아 사이에서 인지도가 있었을 뿐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습니.


대략적인 구성원의 캐릭터가 정해져가는 시점인 싱글 10집 大声ダイヤモンド에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14‘RIVER’로 첫 오리콘 1위를 획득 이후 국민적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風は吹いている'로 일본여성그룹으로는 4번째의 1000만장을 달성했으며 여성아티스트 누계판매 2천만장을 돌파하며 하마사키 아유미(浜崎 あゆみ)를 꺽고 1위에 올라섰습니


초기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목표가 있어서 AKB48을 일종의 연예계진출의 관문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 지망하는 분야가 달랐다이는 초기의 구성원에게 두드러진 성향인데 8기 이후의 구성원선발에 있어서는 ‘AKB에 들어가고 싶어서가 오디션 참가 이유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48이라는 숫자는 소속 사무소의 이름이자 사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인원수를 48명으로 맞추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폐기되고 이후의 충원에 따라 정식 구성원인 A,K,B 3개 팀과 연구생팀으로 구성되어지고 있다.이 팀은 팀간의 이적이나 결원시 연구생들의 승격등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마케팅 방식이 기존의 그룹들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악수회나 식사회를 열었고 극장에서부터 시행된 인기투표로 인한 다음 공연 멤버구성은 CD에 동봉된 엽서나 유료 팬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기투표가 되어 투표로 결정된 순위에 따라 발매CD에서의 위치가 정해지며 커플링곡 담당이나 방송출연 우선대상자가 선정되어집니다


이를 위하여 팬들의 대량구매와 싱글 앨범에서의 타이틀곡 외에도 여러 커플링곡을 만들어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한정판 초회판 통상판등 다시 표지를 달리하는 여러 버전을 제작하여 수집가들을 힘들게 한데다가 악수회의 참가권역시 무작위로 앨범등에 첨부하여 원하는 멤버와 만나기 위하여 여러장을 사게 유도하는등의 마케팅 방식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매 전략의 유지를 위하여 극장의 입장권이나 사진집과 같은 파생상품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저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극장에 자주 방문하는 팬들을 위한 이벤트나 극장전용상품에만 동봉되어있는 악수회 참가권이 있는등(참가할 수 있는 악수회의 종류가 다릅니다)의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순위 선거로는 인기 구성원의 독식이 이어진다는 불만으로 출연 구성원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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