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와노 기요시로(忌野清志郎, 栗原清志)
1951년 4월 2일 ~ 2009년 5월 2일
일본 록의 왕이라고 불리며 일본식의 락 콘서트, 라이브 공연 스타일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길다고 생각하시면 2'22부터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 타이머즈는 어디까지나 우연히도 RC섹션의 멤버들과 전원이 닮은 구성원을 가진 전혀 관계없는 그룹입니다만 어째서인지 RC섹션의 방송 금지에 대해서 생방송을 이용하여 이런 노래를 불러 줬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불어 닥친 전자기타붐에 영향을 받아 커버밴드 ‘No Name’을 결성하여 음악활동을 시작하였고 66년에 ‘더 클로버(ザ・クローバー)’를 고바야시 카즈오(小林和生) 바렌 켄치(破廉ケンチ, 桶田賢一)와 함께 결성하였으나 해산과 결성을 반복하며 ‘더 클로버(ザ・クローバー)’에서 ‘The Remainders of The Clover’로 다시‘ The Remainders of The Clover Succession’에서 마지막으로 ‘RC섹션(RCサクセション)’이 결성되게 됩니다.
70년에 포크그룹으로써 데뷔하지만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고 오히려 이노우에 요스이(井上陽水)와 공동으로 작업한 ‘帰れない二人’ ‘待ちぼうけ’쪽이 더 인기를 끌었습니다. 76년 소속사를 옮기면서 록 그룹화 하면서 78년부터는 펑크와 글램 계열의 영향이 패션이나 화장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80년 ‘雨あがりの夜空に’와 ‘トランジスタ・ラジオ’의 인기로 인하여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고 82년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와 ‘い・け・な・いルージュマジック’을 발표 PV에서 과감한 화장과 남성간의 키스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일본 록의 상징처럼 잡지나 대중매체에 소개되고 있었으며 방송출연시의 태도가 문제가 되어 시청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합니다.
이때까지 인기에 비하여 낮은 처우를 받던 그는 결국 의사로부터 간질환 판정을 받았고 이러한 환경과 소속사무소에서 음반 발매회사를 상의 없이 자신이 싫어하는 회사에서 발매하기로 결정한데에 반발하여 자신의 팬이면 그 음반을 구매하지 말 것을 권하며 소송에 돌입하며 결국 독립사무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반원전을 주제로하는 앨범이 판매중지가 되자 레코드사를 바꾸며 재발매를 강행하였고 이 당시 판매중지하도록 압력을 가한 기업이나 이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를 라이브 공연에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90년 그룹활동을 무기한 정지하면서 솔로활동과 함께 다양한 멤버들과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활발한 음악활동을 보여주던 중 2006년 후두암으로 입원하게 되고 치료를 받는 경우 음악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에 대체의학적 치료방법을 고집하게 됩니다. 2008년 그의 복귀 라이브 공연에서 보여진 그의 투병생활과 재활과정을 보여준 영상(정말 최고입니다 어떻게 구해서 보여드릴수가 없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은 팬들을 열광하게하며 복귀에 성공하였으나 7월에 암이 허리에 전이된 것이 알려져 다시 요양에 들어갔습니다. 2009년 들어 신곡을 발표하며 활동 재개의 움직임을 보였지만 5월 2일 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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