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나 링고(椎名林檎)
선천적 질환으로 인한 수술의 후유증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10년 이상 해온 발레와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 뒤 중학교 때부터는 연극에 빠졌지만 연극에 쓰일 음악을 부탁받은 것을 계기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여 학원제를 중심으로 활동과 해산을 반복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94년 호리프로에서 주최하는 오디션프로에 참가 했지만 본인은 아이돌이 되기 위한 등용문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야마하에서 주최 하는 음악 경연대회(TEENS'MUSIC FESTIVAL)에 밴드 ‘Marvelous Marble’로 출장하여 장려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96년에 야마하에서 주최하는 다른 경연대회인 ‘MUSIC QUEST JAPAN’에 다시 출전하여 관계자에 솔로 전향을 권유 받고 결승에 시이나 링고(椎名林檎)로 ‘ここでキスして。’를 불러 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97년에는 데뷔 앨범의 곡선정 문제로 레코드 회사 직원과 충돌이 생겨 약 3개월간 영국에 머물지만 데뷔를 결심하고 돌아와서 98년 싱글 앨범 ‘幸福論’으로 데뷔하고 곧이어 싱글 앨범 ‘歌舞伎町の女王’을 발매했지만 시장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아 이후에는 시이나의 의견대로 발매 하기로 하게 됩니다.
99년의 싱글 앨범 ‘ここでキスして。’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앨범 ‘無罪モラトリアム’이 밀리언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 때 쯤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곡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말쯤에 발표한 네 번째 싱글앨범 ‘本能’은 간호사 복장을 하고 찍은 PV와 앨범 자켓이 화제가 되면서 밀리언을 기록하게 됩니다.
행복이 겹친 00년에는 공적으로는 두 번째 앨범 ‘勝訴ストリップ’이 더블밀리언을 기록하면서 연말의 베스트앨범상을 타게 되면서 인기는 단단해 졌고 사적으로는 결혼을 발표하게 되는 해였고 이듬해에 일곱 번째 싱글 ‘真夜中は純潔’을 발매하지만 PV촬영중 임신사실을 알게 되어PV는 애니메이션으로 대체되고 출산을 위하여 활동 중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독특한 창법만큼이나 강렬한 퍼포먼스 등 때문인지 그녀를 모델로 한 캐릭터도 많고 2000년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02년에는 이혼을 하게 되었지만 03년 싱글 앨범 ‘茎(STEM)〜大名遊ビ編〜’가 자신의 첫 오리콘 1위를 가져다주었고 TV출연도 재개하며 라이브투어도 진행하게 됩니다.
04년에 자신의 라이브 투어를 위해 만들어 졌던 백 밴드와 함께 밴드 ‘東京事変’으로 활동하기로 하고 솔로활동을 마무리한다는 것 같은 발언을 합니다.
06년 ‘カリソメ乙女(DEATH JAZZ ver.)’가 인터넷 판매 한정으로 발매되었고 08년 데뷔 10주년 기념 기획이 진행되면서 솔로로 무대에 서기 시작하여 앨범의 솔로 명의의 발매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12년 동경사변이 해체하며 이후 다시 솔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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